5.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사냥감을 수행원들에게 떠맡기고 제 방으로 돌아가며 복도에서 내내 수군거리며 키득거렸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아킬레우스는 보기 드물게 성량을 조금 키워 말했다. “이타케의 왕께서는 정말 아름다우시네. 좀 당황했어. 그분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며 제우스의 선택을 받지 않았다니, 그럼 그런 선택을 받았다는 트로이아의 파...
들어가기 전에 1) 본 소설은 본 포스타입에서 단문 연재 중인 세계관 '미러세븐'의 연장선입니다. 까닭에 캐릭터 디자인이 글쓴이의 자캐와 동일합니다.2)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대로 하지만, 올림포스의 신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3) 원전으로 삼은 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몇 가지 호메로스 이후 후기 신화를 채택했습...
녹슨 청동기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보통은 그렇다. 나는 18세기에는 일부러 <일리아스>를 읽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호메로스의 고전이라면 지겹게만 느꼈다. 그 시절의 우리 중에선 청동기 시절에 있었다는 전쟁사로부터 비롯한 사도가 많았다. 모든 불화가 호메로스로부터 기인했다. 우리의 기억이 아닌 기록에 매달려 잘잘못을 따지...
다시 만나 기쁘다는 말은 생각보다 어려워. 모든 인간에게 그러한지, 파벨 어거스터 설리번이라는 개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11살이 되던 해 일찍이 나를 찾아준 미셸 펠레티에 경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 그 얼굴을 다시 보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마주 안아주시니 말문도 막히고 눈물도 꽉 막혀버리더군. 인간의 ...
백사장에도 눈이 쌓였다. 파도가 밀려들었다. 나는 수평선을 마주 보고 서서 고르게 이는 파도의 수를 세었다.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이 기분이 좋다. 물거품에서 솟아오를 여신은 없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거기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주변을 더 크게 둘러보았다가, 조그맣게 목소리를 내었다. “여긴 꺾어와도 좋을 꽃이 ...
1. 사랑하는 그로부터 딱 하나 난처한 점을 고르라면 그것입니다. 그는 제가 내뱉는 정직한 답만을 골라서 믿어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에게 정치적이었던 적이 없는데, 그의 마음속에는 제가 아닌 타인이 심어놓은 이미지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뮈르미도네스의 용맹스러운 영웅, 프티아의 영광, 영웅 펠레우스보다 감히 위대해질 아들이며 테티스의 이름을 드높일 자, 네...
1. 인지의 규모에 관하여 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무더기로 존재하고 어설프게 자라나며 엉뚱하게 뒤엉켜 있기 일쑤입니다. 지평선 너머에 얼마나 다른 세상이 있는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저 너머에서 봤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꼼짝한 일이 없습니다. 서로 닮은 이가 많고, 아니, 어쩌면 저 너머에도 ‘제’가 있어서 아직도 검은 바다에 뗏목 ...
1. 집마다 시름 소리가 가라앉았다. 우리 집도 열외는 아니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나의 조모는 아침까지 숨을 고르게 쉬었고, 한동안 입에 대지도 못했던 조금 되직한 음식까지 먹었다. 나는 동트기 직전 새벽에 그가 무슨 일인가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가 마음속으로 모시는 온갖 신, 가끔은 물 건너온 외국의 구세주에게 감사하다며 물 떠 놓...
1. 프란체스코는 나에게 격정을 죽이라고 말했다. 나는 기다 아니다 대답하지 않았고, “밤이 깊었으니 들어가서 주무세요.”, 툴툴거렸다. 사제는 금색 머리칼을 헤집듯이 긁적이다가 “내일 얘기하자.”고 나의 무도한 어리광을 승인한다. 문안을 온 그가 떠나자마자 나는 서랍을 열어 빈 악보를 여러 장 꺼내 그의 이름을 붙였다. “기만자,” 종이에 그 선율을 적었...
1.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전날부터 수화기 너머로 조잘거리는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유선 전화로 통화를 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우리끼리 있을 땐 제법 수다스러웠다. 나는 퇴근 후 침대에 누워 협탁에 설치한 유선 전화 수화기의 선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아가며 한탄을 들었다. 천장에 빛바랜 야광 별이 붙어 있었다. (난 그걸...
1. 아버지는 자주 나의 눈은 어머니를 닮아 맑은 회색빛이라고 했다. 밤 깊으면 늘 집 가까운 곳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났는데 그날은 사방이 고요했다. 바람결에 홑창이 흔들렸다. 침대 가장자리 근처 의자에 앉아 뺨을 붙이고 엎드려서 아무 얘기라도 좋으니 들려달라고 청하면 아버지는, 다 낡아서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은 연애사만을 읊었다. 고장 난 것처럼. ...
사랑해, 그것만큼 하기 쉬운 거짓말이 없다. 나는 그 말을 많지 않고 적지 않은 이들에게 들었다. 들을 적마다 믿었고, 번번이 사실은 아니었다. 인간은 어떠한 감정이든 손쉽게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사랑으로 치환하거나 모종의 집착을, 혹은 자신의 허영을 사랑이라 치장하는 식이다. 난생처음 나에게 사랑한다 말했던 남자는 어쩌면 감이 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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